글:홍상균(portish@nownuri.net)
프롤로그 - 움직임
1990년대 혹은 정보화시대. 음악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예술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상투적인 세기말을 향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더 이상 획기적인 창작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어난 기괴한 상상들, 가학·피가학적 욕구 표출, 상식을 뛰어 넘고자 하는 외곡된 발상으로 둘러 쌓이면서, 일반인 역시 보다 큰 자극을 원하는 상황이 맞물려 일어난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더불어 급격한 산업화에 테크놀러지의 무한한 발전도 무시할 수 없겠다. 거대한 정보의 틈 사이로 인간적인 면을 원하는 것인지, 극대화된 정보화를 원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것들이 교차하며 이루어된 하이브리드(hybrid) 문화가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대표하지 않아도 좋다. 억압된 세상에 발을 맞추는 마네킨이 아니라면 벌써 느꼈을테고, 어쩔 수 없는 소수로부터 서서히 영향권이 확대되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서.
Now Modernation... - Indie Music
음악에서 현실의 반영과 저항을 가장 민감하게 나타내는 분야를 보자면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소위 인디(indie ; independent) 문화를 하나의 예로서 들 수 있다. 인디 문화가 활발히 생성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생소하겠지만 음악이 존재하는 수 많은 나라에서는 인디 문화를 무시할 수가 없다. 인디에서 인기를 끌었다 싶으면 그 음악이 몇 년 뒤에는 반드시 오버그라운드를 지배하는 공식 아닌 공식이 성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디의 모든 음악이 오버그라운드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며 폭발적인 대중친화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단지 앞으로의 성향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지표로 삼을 수 있다는 점과 현재를 대변하기에 적절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지금의 인디는 어떤 음악이 존재하며 소수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을까. 우리는 크게 록 음악의 두 가지 측면으로 옅볼 수 있다. 모던 록(Modern Rock)에 뿌리를 두고 점차 분화되기도 하고 통합되기도 하는 일련의 '현재진행형'을 띤 음악과 80년대 메틀씬의 극단화로 나타난 '지역성'을 띤 극한의 음악으로 바라보게 된다.
우선 전자의 경우를 보자. 이러한 모던 록에 해당하는 음악을 살피면 포스트-브릿팝·모던록(이런 말이 존재한다면)과 드럼&베이스(Drum N' Bass)를 필두로 변화하는 클럽 테크노씬, 브리스톨 사운드의 또 다른 미래 트립합(Trip Hop)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한 때를 풍미하던 브릿팝 군단 Blur·Oasis·Suede·Pulp 등의 대표그룹은 이젠 어떠한 대안을 내놓기엔 부족하다. 상업적인 성공도도 그러하겠지만 CMJ같은 컬리지 성향이 강한 잡지에서도 화제성을 띠기엔 그들은 거대하고 더 이상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에 위에서 언급했던 좀 더 특화된 무언가를 갈구하게 된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어떠한 '수퍼스타'의 부재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만큼 전문성이 중요시되는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모던 록의 수 많은 서브 장르들 하나 하나에 중점을 두고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어느덧 현재성에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수 많은 장르를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 메인스트림 록이 아닌 모든 음악을 '모던 록'에 넣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후자의 경우는 멜로딕 데스 메틀(Melodic Death Metal)·블랙 메틀(Black Metal)의 엄청난 파워 플레이와 전형적인 작법이 해당한다. 이젠 메틀의 제1강국으로 인정받는 스웨덴을 중심으로 네델란드, 덴마크 같은 북유럽 음악의 성장은 놀랍기만 하다. 앨범시장은 최대 5만장이 넘지않는 소규모지만 열혈 매니어의 군집과 하루가 다르게 만들어지는 클럽 그룹들을 보자면 메틀씬의 조류로 충분히 여길 수 있다.
90년대 극한 음악의 제1세대로 꼽을 수 있는 In Flames, Dark Tranquility, Satyricon, Emperor, Cradle Of Filth, Burzum, Mayhem은 이미 추앙받는 선구자들이다. 블랙 메틀의 뿌리가 어떻든 80년대의 관계를 따지기 보다 새로운 씬으로 여기는 것이 대부분의 생각이다.
90년대 초 잠시 성행하던 데스 메틀·둠 메틀(Doom Metal)을 발전시킨 요소도 있지만 북유럽의 독특한 지역성은 독자적인 완성으로 일으켰다고 말하게 되는 것은 서정성과 뛰어난 멜로디 감각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미국 플로리다 씬과 비교해서 무자피한 투-베이스 드럼이 아닌 멜로딕 기타 프레이즈에 중점을 둔 것은 우리가 주지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의 독특한 팝적 감각이 극한의 음악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누구나 받아들일 사실이다.
양자의 경우를 간략하게 알아보았는데, 이것들만 볼 때 록의 커다란 두 줄기는 철저하게 대치되어 결코 융합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그러하고 뮤지션들 자체의 생각도(이전에 서로의 음악을 절대 들을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진부하게 이들을 열거했는가? 정말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가? 이에 대한 한마디의 답은 고딕(gothic)으로 설명이 된다.
고딕(Gothic)의 기원을 찾아서 - 【 올드 스쿨(Old School) 고딕 】
이제껏 언급이 없었던 고딕을 말하기 전에 고딕의 근본적인 의미부터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고딕이란 단어는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역사 시간이나 사회 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봤던 것이다.
당시의 기억을 어렴풋이 캐내면 고대 서양의 건축 양식이라고 알고 있으며 화려한 장식을 배제한 단순하고 투박한 것이 특징이라는 점까지 이르게 된다. 이것은 진보적인 방향성에 대해서 진부하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뜻으로 쓰였음을 볼 때 우리가 쓰고 있는 '야만'과 '미개'라는 단어를 어느 정도 연관지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옛 건축물의 관점이 아니라 현대 예술에 녹아든 고딕의 이미지를 추측해 보자. 일종의 호러·심령 영화와 소설 등지에도 간간이 쓰이는 것들로서 어둡고 가라앉으며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은제 장신구, 새하얀 화장과 액센트를 넣는 검정과 보라 혹은 빨강, 검정 계열의 긴 옷, 날카로운 선 같은. 연상되는 단어도 탐미적·퇴폐적·가학/피가학 같이 현실에서는 거부되는 요소들을 하나씩 접목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서서히 굳어지는 인상이다.
이것들은 고딕 영화에서의 공통된 주제 의식과 의상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 낸 형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방대해 보인다. 누구나 한번쯤 가졌을 만한 변태적 욕망과 삐뚤어진 현실관을 단순히 흘러가는 예술의 일부분이라고 치부하기엔 무언가 부족하게 느껴지면서. 일단 이것들의 근본을 따지자면 수 백년 전의 어두웠던 중세의 고통과 환락이므로 최소한의 역사성은 띤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외적인 요소만을 따져 보면 음악에서의 내적인 충실도나 형태에 대해서는 쉽게 상상이 가질 않는다. 뮤지션 자신을 꾸미는데 일반적인 고딕 의상에 약간의 퇴폐미만 있다고 '고딕'으로 부여받을 수 없는 입장이니까.
음악에서의 고딕을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은 1978년 BBC TV의 Anthony H. Wilson이란 사람이 Joy Division의 음악을 "메인스트림 팝에 비해 '고딕적'이다"라고 언급하면서 부터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아이러니컬하게 현재는 Joy Division을 고딕의 원조로서가 아닌 포스트-펑크 세대를 이끈 진보적인 그룹으로 평가 받는다).
왜 하필이면 '고딕'이란 말을 사용했는가. Joy Division의 음악을 전혀 들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접하게 된다면, 누구나 '새로우며 어둡고 주술적인 펑크' 정도의 평가를 했을 것이다. 이미 당시 젊은이들의 지하 지지기반을 꾸려 나갔던 펑크의 음악과 비교하건대, 폭발적인 광란과 반항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짐에도 음악에서의 관련 뿌리를 찾으면 펑크와 그나마 가장 유사했다. 펑크에 가깝지만 3-chord로 일관하지 않으며 메이저 코드 아닌 마이너 코드를 즐겼고, 건반 악기의 활용도가 높기도 하고, 저음 보컬로 무거운 메시지를 던지려 했다.
여기서 일단 음악적 '고딕'의 가설을 하나 세우면 "광기와 분노를 내면 세계로 잠재우는 저음의 보컬에 펑크적인 리프를 사용하며 드럼을 프로그래밍으로 대신하기도 하면서 건반의 비중이 기존 록 음악에 비해 많은 음악"으로 해볼까. 결국 이 말들은 펑크가 디스코 열풍에 휩싸이며 사라져 갈 때 메인스트림 팝에 대항한 펑크의 또 다른 모습, 즉 포스트-펑크의 일부라고 여겼을 때의 평가이다.
직접적으로는 올드 스쿨(Old School) 고딕 중에서도 70년대 말 '고딕적인 펑크'였던 그룹(예를 들면 Joy Division와 Bauhaus로 대표되는)을 중심으로 두었기 때문이지 '고딕'의 또 다른 일면을 보유했던 그룹과의 연관성은 희박하다고 생각된다.
다른 일면이란 리듬에서 확실한 프로그래밍으로서 디스코 같은 효과를 얻고자 하는 고딕 그룹들도 다수 있었다는 것인데, 주류의 요소를 빼 와서 인디의 정신으로 뭉개 버리는 행위도 이미 즐겼었다. 여기서 가설의 첫 번째 수정을 가하게 되는데, 반드시 포스트-펑크의 일부가 고딕이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펑크와 비슷한 시기에 동시 파생해서 각자의 길을 걸어오며 공존하고 있었다"라는 말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펑크와 비슷한'이란 표현이 보편적일지 몰라도, 펑크적 요소는 고딕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펑크와의 공통분모는 있어도 서브 장르로는 두 음악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90년대에 새롭게 태어나는 고딕 사운드와는 천지 차이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고딕에서도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사실은 고딕 음악을 설명할 때는 음악 본연의 성질도 중요하겠지만 외적인 뮤지션의 애티튜드와 컬쳐도 반드시 첨부시켜야 하는 점이다. 고딕이란 음악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이들을 공통점을 잇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최소한의 전제조건은 필요하다. 고딕은 이렇게 애티튜드와 음악이 서로 결부되었기 때문에 컬쳐지향의 예술로 승화되고, 이로 인해 펑크와의 연관성을 띠는 지도 모른다. 비록 방법은 상반되지만.
고딕과 펑크의 관계에 더불어 몇 가지 더 추가하면 인더스트리얼과 펑크, 인더스트리얼과 고딕은 결코 떨어뜨리려야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련 속에 독자적인 발전을 했다는 것이고, 네오 펑크(혹은 펑크 리바이벌)를 제외하고서 적어도 유럽씬에서는 서로의 교류는 하나의 정도를 걸을 만큼 교차되어 있을 정도이다. 앞으로 90년대 고딕을 이야기할 때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이쯤에서 접어 두기로 하자.
고딕은 이대로 사라지는가? 【 퍼스트 스쿨(First School) 고딕 】
70년대 단순히 '고딕적'이란 표현에서 '고딕 음악' 타이틀을 얻기까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스컴이나 대중에 잠시 드러났던 Joy Division의 이미지 메이커였던 Ian Curtis가 1980년에 자살을 함으로써 고딕씬의 형태는 점차적으로 감소하고 심지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올드 스쿨 고딕을 이끌었던 Bauhaus, Sisters of Mercy, Sex Gang Children, Alien Sex Fiend, Specimen 역시 좁아진 입지에서 살아남기엔 버거워 보인다.
그나마 Bauhaus와 Sisters of Mercy 정도는 끊임없이 변모하며 80년대 중반에 고딕의 모범이 될 앨범을 발표하기도 해서 근근한 명맥은 이어갔다. 우선적으로 고딕을 떠들던 매스컴은 Ian Curtis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새로운 고딕 사운드를 찾는 혈안에 사로잡혀 가능성 있는 신인 뮤지션에게 영락없는 '제2의 Ian Curtis'라는 칭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지지기반을 가지면서 모던록의 역사를 그룹의 역사와 일치시켜 버린 The Cure의 Robert Smith의 등장은 고딕을 사랑했던 팬이나 평론가 집단에게서 동시에 환영받는다.
The Cure도 고딕의 색채를 지닌 것은 [Faith](81)과 [Pornography](82)에서 최전성기를 구가할 때 뿐이라서 퍼스트 스쿨에 곧바로 넣기엔 부족하나 당시 앨범만 듣는다면 분명히 올드 스쿨과 퍼스트 스쿨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만큼은 누구도 The Cure만큼 해내지 못했다. 이 때부터 고딕이 단순히 포스트-펑크의 일부분이라는 평가를 아무도 내리지 않는다. The Cure가 보여준 기타를 삼킬 듯한 어둡고 퇴폐적으로 공간을 채워 가는 키보드의 사용은 앰비언트의 영향도 있는 때론 클래시컬한 느낌인데, 들을 때는 모르다가 마냥 전부 듣고 나면 몹시 흥분되고 저주스런 음의 향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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