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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게의 섬 "자마이카"


레게로 "세계정복" 밥 말리, 저항음악으로 숭배받아

레게(Reggae)를 듣지 않고는 한발짝도 걸을 수 없는 도시―. ‘카리브해의 흑진주’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은 ‘리듬 천국’이다. 공항 택시에서부터 고막이 터져라 볼륨을 높인 카세트의 레게 리듬이 이방인을 깜짝 놀라게 한다. 길거리에선 노점상의 오디오가 질새라 경쟁한다. 리어커 좌판에 스피커만 달랑 내놓은 고물이지만, 소리는 놀랄만큼 쩌렁쩌렁하다.

열대의 태양이 지면 리듬의 에너지는 댄스클럽에서 폭발한다. 인구 70만에 불과한 킹스턴에 댄스클럽이 수십개나 된다. 그중 제일 잘 나간다는 ‘어사일럼’ 클럽, 200여평 공간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디스크자키가 신나는 추임새와 함께 트는 음반은 밥 말리, 지미 클리프, 서드 월드, 토니 레벨 등 오로지 ‘레게 파티’. 자메이카 흑인들은 춤을 타고 나는 걸까? 팔다리와 허리가 따로 놀며 기막히게 리듬을 탄다. 군데군데 백인 관광객들의 몸놀림은 딱딱하고 어색했다. 서구 팝은 4분의4박자 중 첫째와 셋째 박자가 강한 반면, 레게는 둘째와 넷째 박자에 악센트를 준다. 레게를 접한 서구 백인들이 “어떻게 춤을 출 지 모르겠다”고 불평한 것도 그래서다. 레게는 현대 대중음악의 ‘이단아’다. 미국과 유럽 아닌 제3세계 음악으론 유일하게 세계를 정복했다. 그 중심엔 밥 말리가 있었다. 시내 중심가 호프로드의 ‘밥 말리 박물관’. 푸른 알몬드 잎새 아래 말리 동상이 기타를 들고 서 있다. 말리는 1973년 앨범 ‘캐치 어 파이어’로 전세계에 레게 붐을 폭발시킨 ‘레게의 신’. 1981년 36세로 요절할 때까지 자메이카 흑인 민중의 고통과 분노를 대변해 ‘저항음악 영웅’으로 숭배받았다. ‘터프공 스튜디오’ 터에 지은 박물관 1층엔 당시 녹음실이 남아있는데, 미국 팝계에서 활동하는 아들 지기 말리와 며느리 로린 힐이 지금도 사용한단다. 2층에는 각종 자료와 함께 말리 생전 침실과 주방을 재현했다.

내친 김에 말리가 성장한 ‘트렌치 타운’을 찾아나선다. 킹스턴에서도 무법천지로 악명이 높다는 변두리 빈민촌. 담벽 곳곳에 그려진 말리 초상화가 ‘레게의 신’이 살던 동네임을 자부하는듯 했다. 말리는 흙먼지 풀풀 날리던 골목길에서 평생 좋아하던 축구를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도시의 어두운 뒷거리를 헤메며 가난한 민중들의 고통을 맛봤다. 그런 체험은 평생 말리의 음악을 관통했고, 레게가 뿌리내린 정신적 바탕이 됐다.

시내로 돌아가다 바다 쪽으로 ‘그린위치 타운 비치’란 표지가 있어 들어섰다. 멋진 해변일 것이란 기대를 깨고 판자촌이 막아섰다. 아낙 너댓이 생선 좌판을 벌인 골목. 쓰러져가는 판자식당에서 쿵쾅대는 레게 음악 소리에 끌려 차에서 내렸다. 이방인의 침입에 놀란듯 모여든 주민들은 “레게가 좋아 밥 말리 집에 다녀오는 길”이란 말에 “친구!”라며 반겼다. 식당주인은 맑게 끓인 토속 생선국 ‘피시 티’를 떠다줬다. 저만치 골목 안에선 젊은이들이 레게 리듬에 맞춰 춤을 추듯 맨발로 공을 차고 있었다. 말리가 저랬을까. 고단하지만 순박한 자메이카 민초들의 삶. 레게는 그들의 삶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풀뿌리(grass roots)’ 음악이었다. 【킹스턴(자메이카)=권혁종기자  h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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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모 "핑계" 시작으로 투투-룰라도 불러 세계의 레게-한국의 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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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게는 자메이카에서 농촌 흑인들의 전통음악 멘토(Mento)와 미국 리듬앤블루스, 록 등이 접목돼 태어났다. 영ㆍ미 뮤지션들은 엉거주춤하고 머뭇거리는듯 독특한 ‘헤지테이션 비트(hesitation beat)’에 넋을 잃었다. 에릭 클랩튼은 1974년 밥 말리의 ‘난 보안관을 쐈어’를 리메이크해 미국과 영국에서 생애 첫 차트 1위를 했고, 폴 사이먼은 1972년 자메이카로 날아가 ‘모자의 재회’를 녹음했다. 스팅도 명반 ‘싱크로니시티’ 수록곡을 자메이카에서 썼다. 1970년대 말 레게의 저항성에 반한 영국 펑크록 그룹들은 레게 이전 장르인 스카를 흡수해 ‘스카펑크’ 장르를 만들었다. 스카펑크는 1990년대 노 다우트, 311, 서브라임 같은 록밴드가 다시 유행시켰다.

레게는 1990년대 한국 가요에서도 파괴력을 과시했다. 김건모 ‘핑계’를 계기로 마로니에, 임종환, 투투, 룰라, 닥터레게 등 많은 가수가 레게로 인기를 누렸다. 한국 가요를 ‘진한 흑인음악’ 속에 몰아넣은 것은 미국 랩보다 자메이카 레게였다. 1990년 후반 언더 그룹들은 스카펑크를 소개했고, 김종서도 이 음악을 시도했다.

( 킹스턴=임진모ㆍ팝평론가  jjinmoo@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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