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에 러시아의 음향 기술자 레오 테레민 Leo Theremin 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전기적인 음률의 고저가 연주되는 테레민 theremin이라는 흥미로운 악기를 발명한다. 이 악기는 연주자가 악기에 손을 대지 않고도 연주하는 악기로서 연주자의 손이 금속봉에 얼마나 근접하는 가에 따라 음의 고저와 음량이 조절되었다. 테레민의 연주소리는 다소 기괴스러워서 104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공상과학영화나 공포영화의 사운드트랙에 곧잘 사용되었다.
테레민을 연주하고 있는 레오 테레민
그리고 혁명이 성공하자 새로운 지배계급이 된 볼셰비키는 아방가르드의 예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소비에트는 예술이 인민들을 사상, 감정, 분위기로 물들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여겼고 아방가르드 예술을 일종의 사회주의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술은 아지프로 agitprop 라 불리며 실질적이고 창조적인 약진을 해나갔다. 적어도 스탈린이 정권을 잡기 이전까지는.....
엘 리시츠키 El Lissitzky 가 레닌을 위해 제작한 연단으로 구성주의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레오 테레민은 1895년 페테스브르그에서 태어났다. 귀족집안 출신이었던 그는 어렸을 적부터 과학에 소질을 보이며 남들과 다른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소비에트 혁명 후 그의 인텔리겐치아적인 지위가 문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의 과학적 재능으로 말미암아 그는 새로운 혁명정부를 위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느 정도 자유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레오 테레민은 여러 연구를 하던 중 인체의 온도변화를 음향으로 전환하는데 착안하여 테레민을 만들게 되었다.
1921년 어느 날 레오 테레민이 자신이 발명한 새로운 악기를 레닌에게 시연해 보인다. 이 악기는 현도, 건반도, 마우스피스도 없는 악기였다. 음은 전기 장치가 부착된 상자에서 만들어졌다. 연주자는 상자에 부착된 안테나와 금속봉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공기를 연주한다. 이 악기는 전혀 새롭고도 으스스한 음을 만들어내었다. 레닌은 이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악기연주법을 배우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후 소비에트의 현대성을 상징하는 선전도구로서 새로운 악기를 유럽에 선전하러 돌아다니던 테레민은 1927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 신기한 악기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많은 이들이 테레민에 관심을 보였는데 앨버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도 매우 흥미있어 하며 그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한다. 이듬해 그는 테레민의 특허권을 얻은 후 악기 제작권을 RCA에 팔았다. RCA는 이 악기의 연주가 “휘파람 부는 것처럼” 쉽다는 슬로건 하에 악기 판매에 나섰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악기연주가 휘파람 불듯이 쉽지도 않았을 뿐더러 1929년 미국에는 대공황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악기는 미키마우스 클럽에서 시연되기도 했었고 앞서 말했듯이 공상과학영화와 공포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이용되었다. 이 악기의 가장 뛰어난 연주자는 전직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클라라 록모어 Clara Rockmore 였다. 레오 테레민은 아름다운 외모의 그녀에게 구애하였으나 그녀는 변호사 존 록모어 John Rockmore 와 결혼한다.
Clara Rockmore
The Beach Boys - Good Vibrations
로버트 무그는 1950년대 혁신적인 신서사이저라 할 수 있는 미니무그 minimoog 를 발명하여 현대 전자음악 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이다. 그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테레민에 매혹되어 직접 제작하여 팔기까지 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미니무그는 많은 면에서 테레민이 지향하는 바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시대의 신서사이저 음악은 테레민의 은혜를 받은 셈이다.
테레민 연주 듣기
1938년 그는 돌연 미국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많은 이들은 소련의 스파이들이 그의 뉴욕 아파트에서 그를 납치하여 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에 나온 그의 전기에서는 그가 빚 때문에 미국을 떠났고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소련에 호송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어쨌든 그는 그곳에서 혁신적인 도청장치인 The Bug의 작업에 참여하였고 이일로 인해 당시 소련사회의 최고 영예인 스탈린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후에 소련에서 음악학교에서 음악 강의를 맡기도 했으나 현대음악은 해로운 것이라는 비난에 직면하여 이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는 1991년이 되어서야 미국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고 1993년 숨을 거두었다. 1994년 그의 업적을 기린 Theremin: An Electronic Odyssey 라는 다큐멘타리가 발표되었다.
요컨대 테레민의 개발, 발전, 그리고 이어지는 전자음악의 발달의 이면에는 사회주의 혁명, 아방가르드, 기계문명에 대한 낙관주의와 같은 20세기 초 인류문명사의 발전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놓여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대중음악계는 지나친 악기의 기계화, 내지는 전자기기화에 싫증을 낸 이들이 소위 플러그를 뺐다는 의미의 unpluged 공연을 한동안 유행시키기도 했다.
참고할만한 사이트들
http://en.wikipedia.org/wiki/Theremin
http://www.oddmusic.com/theremin/
http://www.obsolete.com/120_years/machines/theremin/index.html
http://www.music.psu.edu/Faculty%20Pages/Ballora/INART55/theremin.html#rockmore




Trackback URL : http://80snet.com/trackback/790